미국에서 대학생활 작성자 : 이주강     작성일 : 2014-07-12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 대학생활은 어렵기만 했다. 외국인 학생들에게 이해성이 많은 교수님 과목을 택해야 한다는 정보를 알지 못했던 첫 학기는 말 그대로 재앙이었다. 식은 죽 먹기 정도였던 대학수학 과목은 나에게 꿈과 같은 미래를 보여주는 듯 했지만, 영한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설명을 읽어도 이해 못했던 생물학 과목은 나에게 절망감만을 주었다. 영어도 못하면서 미국은 왜 왔냐고 다그치는 외국인 혐오증 교수님, Dr. Brown의 영어 과목은 무능하기만 했던 내 자신에 대한 더 깊은 수치감만 주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악몽과 같은 사건이 있다. 영어과목이다. 외국인 혐오증 뿐 아니라, 만성 우울증 환자 같은 영어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에너지 고갈에 대해 리포트를 다음 주 까지 제출하라 한다. 영어편지 한 줄도 쓸 수 없었던 시절에 어찌 에너지 고갈이라는 수준 높은 시사성 문제에 대한 리포트를 내가 쓸 수 있겠는가? 제출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내 가슴은 Dr. Brown의 구두발에 짓눌려 지는 것 같았다. 재목 이외엔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결국, 나보다 삼년 대학생활을 먼저 시작한 고등학교 선배님을 찾아가 안 써주면 나 대학 포기하겠다고 위협했다. 대학생활 삼년밖에 되지 않은 그 선배님 역시 시사 영어작문은 어려웠을 것이다. 우린 대학 도서관을 찾아가 에너지 고갈에 관한 시사 잡지를 뒤적이면서 짜깁기 글을 이어갔다. 어렵게 그리고 어렵게 A-4 용지 3장의 글을 마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제출했다. 낙제만 면하자 라는 나의 작은 소망은 교수님의 무지비한 냉소적 채점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제출한 내 리포트는 한 줄 한 줄 붉은 펜으로 표시되었고, 어느 시사 잡지로 부터 베껴온 것 까지도 지적했다. 날 혐오스럽게 처다 보는 교수님의 얼굴을 난 지금도 기억한다. 출석이라도 잘하면 봐주겠지 하였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학 첫 학기 영어 과목에 낙제 점수를 받았다. 교수님을 찾아갔다. 낙제 학점 대신에 중도포기 W 학점을 달라고 애원했지만, 골프약속으로 지금 가야한다며 나를 밀치고 문을 나선다. 야속한 교수님이었다.

 

한 학기를 그렇게 경험하면서 나는 생존 본능적 기지로 조금씩 대학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다음 학기 Dr. Brown 과목은 내 수강신청에 없었다. 그 때 짜깁기 영어 리포트 작성을 도왔던 선배님은 세계적인 조각가, 이원형 선배님이시다.

 

대학생활이 어려웠던 건 나만은 아니었다. 동병상련의 몇 한국 학생들은 시간만 나면 그림 같은 대학 캠퍼스 푸른 잔디위에 함께 모여 서로의 어려운 점들을 토하면서 한국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면, 아니 때로는 수업시간을 빼면서....... 대학에서 가까운 Redondo 해변을 찾았다. 이 태평양 바다 건너 저편엔 친구들이 있는데..... 한탄의 목소리와 함께 미국맥주로 서러움을 달랬던 시절이다. 우리는 밤늦도록 해변에 앉아 노래했다. 그들에게 내 기타소리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들은 지금 공인회계사, 치과의사, 시공무원, 방사선과의사로서 지금도 그 곳에서 살고 있다. 난 서울에 여러분들과 함께 있고.

 

My second home town, Los Angeles! My life in America as Korean immigrant has been generous, but had to bear many lonely days......

 

이중현  2014-07-12
45년전의 일인데 기억 되어지고 있는 그 이름 Dr. Brown ..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습니다.. 다음편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종건  2014-07-14
인종차별에 무시당하고 그렇게 노력해도 원어민처럼 말이 안나오고 외국만간다고 무조건 영어를 잘하는건 아니죠.. 죽어라 노력해야 교수님 만큼이니...그 어려운 시절 잘 버텨서 다들 훌룡해 지셨잖아요 이번에 w 학점이란게 있다는걸 첨 알았네요.. 시련을 딛고 일어서신 교수님 보니 저도 손이 불끈 쥐어집니다.
안성현  2014-07-14
교수님에게 lonely days를 지내셨다는게 믿기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