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떠나던 날 작성자 : 이주강     작성일 : 2014-07-04

1970년 우리교포가 모여 사는 곳에서 가까운 West Lake 공원

 

197068일 아침 10, 김포공항은 우리 친지들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지금에야 미국 간다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 땐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의 길인 것으로 알았다. 우리 가족은 소위 말해 38 따라지라고 하는 피난민이다. 이북 ( 함경남도 북청 ) 고향을 등지고 남한으로 넘어온 피난민이었다. 그야 말로 탈북가족이다!! 남한에는 먼 친척 몇 분만 계셨다. 그 중 가장 큰 어른이신 우리 아버님은 그들에게 큰 기댐이셨는데....... 우리 가족의 이민소식은 그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생이별이었다. 그날 김포공항은 이별의 슬픔으로 난리가 난 것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 역시 친구들에 둘러싸여 이별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버님과 함께 미국으로 향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미국 United Airline이다. 미국까지 가는 대한항공이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앉자마자, 인형처럼 생긴 백인 여자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눈치로 알았다. 뭘 마시겠냐고 묻는 모양이다. 내 아버님은 영어 선생님이셨다. 연세의전을 졸업하셨지만 평생 의사생활은 안하신 분이시다. 의과대학 졸업 직후 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영문학을 다시 전공하셨다. 그런데, 백인 여자의 오리지날 영어발음을 알아듣지 못하시는 모양이다. 또 아버지가 말하는 일본식 영어발음은 그 여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은 Water......... 우린 물만 마시고 미국까지 날아갔다. 손짓으로 남들이 마시는 것을 원한다고 표현할 배짱도 없었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타보는 비행기! 비행기의 작은 창으로 부터 얼굴을 땔 수 없었다. 드디어 하늘을 날았다! 초라한 그 시대 김포공항이 눈 아래에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구름 때가 보인다, 푸른 하늘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나무 하나 없는 헐벗은 민둥산들만 보였다. 625 전쟁시절 융단폭격으로 대한민국 모든 산이 다 타버린 것이다. 그것뿐인가! 그 시절, 추운겨울 얼어 죽지 않기 위해선 모두가 땔감을 찾으러 산에 갔기 때문이다. 매 해 45, 우린 학교수업을 뒤로 하고 선생님들과 주위 산과 들에 나무 심으러 다녔다. 나무를 갉아먹는 송충이를 잡으러 다녔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몇 백 명의 학생들이 잡아온 송충이들을 모아 큰 구덩이에 던져놓고 휘발유를 뿌린 후, 불로 태워 죽였던....... 송창이 화형식! 벌거숭이 우리나라의 산하가 지금은 울창한 모습으로 변한 것은 정말 기적이다. 우리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심은 나무들이다. 난 지금도 워커힐 주위 산을 바라볼 때마다, 저 수많은 나무 중, 내가심은 나무도 있을 텐데....... 한다.

 

비행기는 일본 하네다 공항에 착륙했다. 아버지는 공항 안까지 찾아온 대학친구들과 반갑게 대화를 나누는 중, 나는 공항 화장실에서 문화충격을 받았다. 화장실을 사용한 후 사람들이 손을 씻는다. 화려할 정도로 깨끗한 화장실은 충격적이었지만....... 나도 질세라 손을 씻으려 하였다. 근데!!!! 수도꼭지에 손잡이가 없다. 물을 어떻게 나오게 하지? 옆으로 봐도, 밑을 봐도 수도꼭지가 없다. 남들은 잘도 씻는데..... 내 수돗물은 안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내손이 수도꼭지 끝에 닿자마자 물이 쏟아져 나온다 !!!! 충격이었다. 다 씻었다. 이젠 물을 잠가야 하는데..... 또 다시 황당하다. 근데 조금 후 저절로 물이 멈춘다. 충격이었다. 하네다 공항을 떠나 미국 본토로 향하는 비행기 속에서 아버지한테 충격적인 내 경험을 말씀드렸다. 웃기만 하신다. 일본은 우리보다 멀리 앞서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 로스엔젤스 상공을 통과하면서 착륙준비에 있었다. 비행기 속에서 내려다보이는 어둠속의 로스엔젤레스는..... 할 말을 잊었다. 20살 갓 된 나에게 어두운 밤 속에 비추어진 로스엔젤레스는 황홀한 불빛 그 자체였다. 도시의 불빛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올 때까지 처음 경험하는 세계 최대 도시의 공항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하얀 머리, 노랑머리, 회색머리, 갈색머리, 곱슬머리 총천연색이다........ 그들이 내뱃는 다양한 외국어......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이다...... 화려한 상품광고 속 미녀들............. 공항에 마중 나온 엄마와 누나는 거의 3년 만에 본다. 하지만, 그 순간도 난 주위를 살펴보는데 정신이 없었다.

 

우리 형제들은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난 미국 아침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관음증 환자처럼 커튼을 살짝 들어 올리며 밖을 내다보았다. 세수 대충하고 조용히 문을 열고 집을 나왔다. 새벽 6시쯤이다. 떨어진 쓰레기 하나 없는 동네는 마치 무대 위에 지어진 집 같다. 쌍둥이처럼 생긴 집들은 길 양쪽에 마치 장난감처럼 늘어 서있다. 각 집마다 앞마당에는 파란 잔디와 저마다 다른 꽃으로 장식되었다. 길 잃을 걱정에 직선으로만 걷기로 했다. 새들 소리가 요란하다. 지나가는 백인 할머니가 날 보더니, 하이! 하고 말을 한다. 난 그 소리가 일본 말인 줄 알았다. 아마 내가 일본인처럼 생각한 모양이다 하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을 하는 게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난 웃음만 지었다. 계속 걸었다. 멋진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사람이 걷는 길은 안전하고 넓었다. 난 그림 속을 걷는 듯 착각하고 있었다. 근데 이게 웬일? 갑자기 집 앞마당 파란 잔디에서 톡하는 소리와 함께 물꼭지가 솟구쳐 나와 물을 뿜기 시작한다. 잔디에 물주는 것이라 한다. 난 몰랐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

 

어제만 하더라도 난 차도와 인도가 뒤섞여있고 사람들로 분미고 자동차가 빵빵거리고 시끄러운 서울에서 살았는데......... 다른 차원의 세계로 공간이동을 한 것처럼 느꼈다. 미래로 시간여행을 한 것이다. 지금 다른 세상에 와 있었다, 미국 켈리포니아 197068. 교수님, 뻥이 좀 심한 거 아녜요? 1970년 서울은 그랬어. 아버지에게 물어봐!

 

 

한주영  2014-07-04
교수님, 70년대는 아직 태어나기 전이라 상상이 안가네요. 교수님께서 놀라시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네요. ^^
이중현  2014-07-05
흥미진진하네요 교수님^^ 저도 그 시절 일본에 센서로 작동하는 수전이 있었다는게 놀랍네요 거의 반세기 전인데 말이죠
안성현  2014-07-05
44년만에 서울은 무섭게 발전했군요.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 감사하기도 하네요.
이재훈  2014-07-08
4월5일 하면 식목일이라 나무심던 기억이 나네요~ 송충이 화형식도 재밌는 추억이고요~ㅎㅎ 교수님의 어렸을적 호기심에 가득찬 눈망울을 상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