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memory with Dr. Sammy Lee 작성자 : 이주강     작성일 : 2013-06-17

 

 

Dr. Sammy Lee

 

나이가 먹어서 그런 모양이다. 옛 일들과 마주치면 눈을 감고 옛 생각들을 더듬게 된다. 며칠 전 김천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읽고 있었던 신문에 이 분에 대한 기사가 났기 때문이다.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해진 50여 년 전 일이다. 10미터 플랫폼 하이 다이빙을 방금 마치고 흠뻑 젖은 내 양쪽 어깨를 잡고 가볍게 흔들면서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라는 충고와 함께, 내 이마에 키스를 해주셨던 사람이다.

 

1920, 미국으로 건너간 초기 미국 이민자로부터 켈리포니아, 프레즈노 시에서 태어났다. 로스엔젤레스에서 유명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향해 가다보면 황금처럼 펼쳐진 목초로 뒤덮인 대평원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농업도시다. 신문에 난 기사 내용은 한국인이 모여 사는 로스엔젤레스, 한인타운 내에 초등학교가 설립되면서 학교 명칭으로 이 분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Sammy Lee 초등학교 !!!!!!!! 미국에선 학교 이름으로 그 지역과 연관 있는 유명인들의 이름을 붙이는 게 흔히 있는 일이다.

 

Sammy Lee, 미국 올림픽 역사에서 한 시대를 장식했던 국가적 영웅이었다. 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연이어 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국가적 영웅이다. 플랫폼 ( 높이 10 m ) 다이빙 분야에서 연속으로 금메달을 탄 것은 그 시대 처음 있었던 기록이었다. 타 인종에 대한 인종차별과 선입감으로 가득한 그 시대에 미국국가 대표선수로 금메달을 탄 것이다. 그것도 두 번 씩이나. 그 후 USC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비인후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미국을 다이빙 강국으로 만드는데 공을 세우신 분이시다.

 

나와 Dr. Sammy Lee와의 짧은 인연은 50여년을 거슬러 간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그 분이 정부초청으로 아버지의 나라를 방문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매일처럼 다이빙 연습에 열중하던 동대문 운동장 내, 다이빙 수영장을 찾아 어린 꿈나무 선수들을 방문하신 것이다. 그 시대, 국내에서 유일한 올림픽 규모의 다이빙 수영장이었다. 다이빙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한국 다이빙계의 어린 꿈나무를 보러온 것이다. 우리 다이빙 팀들의 연습과정을 유심히 관찰한 후, 칭찬과 함께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잘 해야 된다는 덕담과 함께, 한 수 가르쳐주셨던 기억이 나서다. 그 후 난 46회 전국체육대회 플랫폼 다이빙에서 금메달을 탔다. 나처럼 자그마한 키에 웃음이 가득한 모습이 생각이 난다...... 이제 그 분은 92세가 되셨고 난 60이 넘었다.......

 

그분에 대한 또 한 소식은 며칠 전, 차를 몰고 나간 후, 연락도 없이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자 부인께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수사결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신용카드로 주유를 했고 또 점심을 먹었다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 헤매신 것이다. 먼 곳을 왜 갔는지 모르신다고 한다. 치매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내 양쪽 어깨를 꽉 잡아주셨고 웃음 가득했던 건강한 그 분의 모습이었는데 ...... 흘러간 세월들로 새겨진 그분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다음, 로스엔젤레스를 방문할 땐 꼭 Sammy Lee 초등학교를 방문하리라. 지금 버스창문 밖으로 모내기를 끝내고 잘 정리된 논이 멋지게 보인 답니다.

 

한주영  2013-06-17
삶을 바꾼 만남이 교수님께는 특히나 더 많은것 같네요. 다이빙, 기타, 카이로 앞으로 또 뭐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
이중현  2013-06-17
얼마전 친구의 아버지께서 치매로 1년간 요양원에 계시던중 돌아가셨습니다..인생의 마지막을 더없이 비참하게 만드는 일인데요. 한시대를 풍미한 영웅의 씁쓸한 마지막에 입맛이 쓰네요.. 각자의 삶을 돌아보면 많은 인연들과 이어진 기회라는 선물을 받게 되는데요.. 제 선물은 교수님을 처음 만났던 2010년의 어느날이었더랬죠..^^
김종건  2013-06-17
한주영선생님.. 다이빙, 기타, 카이로, 하모니카..... ㅎㅎ.. 교수님 근데 전국체전 금메달출신 이시면 올림픽 국대선발전에 나가시지 않으셨어요? 보통은 전국체전 다음은.. 국가대표선발전 순인데... 예전에 노인병원에서 일할때 생각납니다. 거기 치매분들중 장군님도 계셨구 장윤정할머니가 매번 저에게 자기 손녀.. 소개시켜 준다고 하셨던게 기억.. 납니다. 그때 장윤정소개 받았어야 했나요?ㅎㅎ .. 아무튼 치매는 어쩔수 없죠.. 억지로 살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열심히 사는수 밖에요.
나강호  2013-06-17
교수님의 재능은 다이빙, 기타, 카이로 그다음에는 주옥같은 칼럼이 아닐런지....시간의 흐름을 누구도 거부할수 없다는 사실
유성용  2013-06-17
이글을 보니 2004년도에 교수님 처음뵈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항상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금같이 건강한 모습 유지하셔야 됩니다^^